콘텐츠 의제/제언 01

드라마 산업은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크게 변한 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방송사가 편성을 책임지고 광고를 통해 제작비를 회수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OTT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제작비는 급격히 상승했고,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얼마의 예산으로,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고, 어떻게 유통하며, IP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까지 함께 설계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은 EP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사업과 콘텐츠를 동시에 이해하는 Executive Producer(EP)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EP는 단순한 제작관리자가 아닙니다. 작품의 기획에서부터 투자, 제작, 마케팅, 해외 판매, OTT 협상, 2차 사업까지 책임지는 프로젝트의 CEO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스튜디오들은 모두 EP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작비 상승은 배우 출연료 때문만은 아닙니다.

촬영 회차, 세트 규모, CG, 미술, 해외 로케이션, 후반작업, 촬영 일정, 외주관리 이 모든 것이 제작비를 결정합니다. 결국 제작비를 통제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입니다. 좋은 EP는 같은 결과물을 만들더라도 더 효율적인 제작 방식을 설계합니다. 같은 장면이라도 촬영 동선을 줄이고, 세트를 재활용하며, 촬영 일정을 재배치하고, 외주 계약을 최적화하는 것만으로도 수십억 원의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EP는 예산을 줄이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는 SBS의 제작관리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SBS는 외부 제작사가 기획한 드라마라도 제작비 관리까지 외주사에 맡기지 않습니다. 대부분 자사 제작PD가 EP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 제작 과정을 관리합니다. 외주 제작사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기획비를 지급하고 프로젝트에서 정리하는 방식도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방식을 유지할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본사 제작PD가 제작비를 직접 관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촬영 회차는 적절한지 미술 규모는 과하지 않은지 CG 예산은 적정한지 현장 인력은 효율적인지 후반작업 일정은 적절한지 이 모든 것을 내부 인력이 직접 관리하면서 제작 노하우를 축적합니다. 결국 제작비 절감은 물론, 다음 작품에서도 동일한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됩니다.

시장 관계자들에게 지금 MBC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를 물으면 비슷한 답이 돌아옵니다. "연출할 인하우스 연출자가 부족하다." "기획PD의 힘이 약하다." "대본을 제대로 보는 시스템이 없다." "MBC만의 색깔이 없다." 좋은 드라마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대본을 골라내는 시스템, 기획을 발전시키는 시스템, 제작비를 통제하는 시스템, 장르 전략을 만드는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MBC는 이 부분이 약합니다. 결국 작품 하나하나가 개별 프로젝트로 끝나고, 조직 전체의 역량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디어기획국장을 맡고 있을 당시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 개편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건의서를 작성하여 드라마 조직의 프로듀싱 기능 강화를 제안했고, 일부가 반영되었습니다.

2020년 당시 작성한 문서의 앞 부분 캡쳐

그 결과 MBC 역사상 처음으로 연출 PD가 아닌 편성PD 출신이 드라마국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EP 기능이 강화되면서 <검은 태양> <옷소매 붉은 끝동> <연인> <밤에 피는 꽃> <수사반장 1958>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등의 작품들이 기획되고 제작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성과를 조직개편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획 기능이 살아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리더십이 교체되면서 조직은 다시 연출 중심으로 회귀했습니다. 결국 기획 기능은 약화되었고 프로듀싱 역량도 함께 약해졌습니다. 드라마 제작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립니다. 따라서 임기 초반에 방향을 잡지 못하면 성과를 확인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최고경영자가 처음부터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드라마 조직을 명실상부한 EP 중심 제작체제로 개편하겠습니다.

제가 사장이 된다면, 전문 프로듀서를 내부 공모와 공개 선발을 병행하여 육성하겠습니다. 연출PD는 연출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EP는 기획, 예산, 제작관리, 마케팅, 해외판매, OTT 협상, IP 사업 전체를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겠습니다. 또한 모든 작품은 EP 중심의 프로젝트 조직(TF)을 구성하여 기획부터 방송, 해외 판매, 2차·3차 사업 종료까지 하나의 조직이 책임지는 체계를 구축하겠습니다. 작품이 끝나면 TF는 해산하지만, 노하우는 조직에 축적됩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일수록 MBC는 더 강한 제작 시스템을 갖게 될 것입니다.

좋은 시스템이 좋은 콘텐츠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중심에는 전문 EP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