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의제/제언 03

지금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드라마 산업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영화산업 역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극장을 찾는 관객은 줄어들었습니다. OTT의 성장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기에 제작비 상승까지 겹치면서 영화 제작 편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화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창작 생태계 전체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이 줄어들면 신인 감독과 배우가 성장할 기회도 줄어듭니다. 드라마 산업 역시 새로운 인재를 공급받기 어려워집니다.

공영방송 MBC는 콘텐츠 생태계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MBC는 단순히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역할을 넘어, 콘텐츠 생태계 전체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역할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콘텐츠는 플랫폼 중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TV용 드라마', '영화', 'OTT 오리지널'처럼 처음부터 플랫폼을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콘텐츠가 극장에서도 상영되고, TV 시리즈로도 편성되며, OTT와 숏폼 플랫폼에서도 소비되는 시대입니다.

하이브리드 콘텐츠 전략을 제안합니다.

이제는 플랫폼이 아니라 IP를 중심으로 기획해야 합니다. 콘텐츠 하나를 다양한 플랫폼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제가 사장이 된다면 극장과 방송, OTT를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추진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120분 분량의 영화를 먼저 극장에서 개봉한 뒤, 이를 30분씩 4부작 시리즈로 재편집하여 MBC에서 방송하고, 이후 OTT와 글로벌 플랫폼으로 유통하는 방식입니다. 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플랫폼에서 활용함으로써 제작비 회수 가능성을 높이고 IP의 생명주기를 연장할 수 있습니다.

MBC는 이미 선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 MBC는 베스트극장을 통해 영화적 완성도를 갖춘 단막극을 꾸준히 제작해 왔습니다. 수많은 신인 작가와 연출자, 배우를 발굴했습니다. 그 정신을 현재의 플랫폼 환경에 맞게 다시 구현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전략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영화산업 회복 정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와 방송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장을 확장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정부의 정책자금과 문화산업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명분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공영방송으로서 산업 생태계를 함께 살리는 역할까지 수행하겠다는 것입니다.

AI는 콘텐츠 산업의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를 예고합니다.

AI는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닙니다. AI로 생성한 영상은 실제 제작 현장에서 활용됩니다. 개인 창작자들도 AI를 이용해 수준 높은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숏폼드라마(마이크로드라마) 시장에선 100% AI로 만든 드라마가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플랫폼 역시 AI 콘텐츠를 새로운 성장 분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MBC가 흐름을 선도해야 합니다. 이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MBC는 2020년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함께 'SF8'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제작했습니다. 제가 미디어기획국장으로 있으면서 추진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SF8'은 한국판 '블랙미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작품성과 실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었습니다. SF 장르 특성상 높은 제작비가 필요했고, 특수효과와 CG 기술에도 제약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AI는 기술과 예산의 한계를 빠르게 낮추고 있습니다. 과거에 수십억 원이 필요했던 장면도 AI를 활용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SF8 포스터

MBC를 AI 콘텐츠의 중심으로 만들겠습니다.

제가 사장이 된다면, '100% AI 드라마 시리즈'를 MBC의 또 다른 대표 브랜드로 만들겠습니다. AI 드라마를 정규편성할 것입니다. 제작 과정을 개방할 것입니다. 신인 감독이나 작가들은 물론 개인 창작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iMBC는 올 하반기 론칭을 목표로 AI 콘텐츠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AI 창작자들이 작품을 올리고, 교류·소통하는 통로로 활용할 것입니다. MBC는 단순히 AI를 활용하는 방송사가 아니라, AI 콘텐츠 산업을 선도하고 표준을 만드는 방송사로 자리매김될 것입니다.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문턱을 낮추는 기술입니다. AI 콘텐츠가 기존 드라마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리미엄 드라마는 앞으로도 만들어지고 소비될 것입니다. 인간의 연기와 연출, 감정은 결코 대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 콘텐츠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입니다. 제작비 부족으로 실현하지 못했던 상상력이 표현되고, 신인 창작자의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구현되고, 독창적인 장르 콘텐츠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AI는 기존 창작자를 위협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더 많은 창작자가 콘텐츠 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새로운 시장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콘텐츠를 만들겠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미 수많은 개인 창작자들이 AI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입니다. MBC가 제공할 것입니다.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온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기존 제작비 구조를 효율화할 것입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AI·문화콘텐츠 정책사업과 연구개발(R&D) 지원사업을 적극 활용할 것입니다. 민간 기업과 손을 잡고 기술 협력 및 공동투자를 병행할 것입니다. 충분히 실행 가능한 사업입니다.

기술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리더가 등장했습니다. OTT 시대에도 그랬고, 모바일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AI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합니다. MBC는 과거 TV 시대를 선도했던 방송사였습니다. 이제는 AI 시대의 콘텐츠를 가장 먼저 실험하고, 가장 먼저 성공시키는 방송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이브리드 전략은 플랫폼을 연결하는 새로운 유통 모델이고, AI 드라마는 새로운 창작 생태계를 여는 미래 전략입니다. 제가 사장이 된다면, 이 두 가지 전략을 통해 MBC를 방송사를 넘어 미래 콘텐츠 플랫폼이자 IP 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